ADA 휩쓴 GLP-1 경쟁…국내 기업은 '월 1회 DDS'로 틈새 공략
올해 열린 미국당뇨병학회(ADA) 학술대회에서 비만·당뇨 치료제 경쟁의 무게중심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
이달 5~8일(현지시간)까지 미국 뉴올리언스에서 열린 ADA 2026의 핵심 화두는 단순한 혈당 강하나 체중 감량을 넘어섰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GLP-1 기반 치료제를 다중작용제, 경구제, MASH·MASLD 등 동반 대사질환 영역으로 확장하며 차세대 대사질환 치료제의 기준을 새로 제시했다.
반면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동일한 효능 경쟁에 정면으로 뛰어들기보다는 약물전달시스템(DDS), 장기지속형 주사제, 고함량 펩타이드 탑재 기술을 앞세워 차별화 가능성을 모색했다.
체중 감량 경쟁 넘어 '대사질환' 치료제로 진화
올해 ADA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은 축은 일라이 릴리의 차세대 비만 치료제 '레타트루타이드(retatrutide)'였다. 레타트루타이드는 GLP-1, GIP, 글루카곤 수용체를 동시에 자극하는 삼중작용제다. 릴리는 비만 3상 TRIUMPH-1 연구에서 12mg 투여군이 80주 동안 평균 28.3% 체중 감소를 보였다고 발표했다. 기존 GLP-1 계열 비만 치료제의 감량 폭을 넘어서는 데이터다.
이번 발표에서 주요하게 봐야할 지점은 단순한 체중감량 효과가 아니다. GLP-1 계열 치료제가 당뇨병 치료제를 넘어 비만, 수면무호흡, 골관절염, 심혈관·신장질환 등 동반질환을 포괄하는 대사질환 치료제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글로벌 빅파마의 개발 전략은 특정 적응증 하나가 아니라, 대사질환 전반에서 임상적 가치를 입증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베링거인겔하임과 질랜드파마가 개발 중인 서보두타이드(survodutide)도 이 같은 흐름을 보여준다다. GLP-1·글루카곤 이중작용제인 서보두타이드는 비만 치료 효과뿐 아니라 내장지방과 간 지방 감소 데이터를 통해 대사이상 지방간질환(MASLD)·대사이상 지방간염(MASH) 영역에서의 가능성을 부각했다. 체중을 얼마나 줄이느냐 못지않게 어떤 조직의 지방을 줄이고, 장기 기능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느냐가 차세대 경쟁 포인트로 부상한 것.
노보노디스크의 카그리세마(CagriSema) 역시 GLP-1 단독요법 이후의 전략을 보여준다. 세마글루타이드에 아밀린 유사체 카그릴린타이드를 결합해 혈당 조절과 체중 감소 효과를 동시에 높이는 접근이다.
이처럼 GLP-1 단일 기전에서 이중·삼중작용제, 아밀린 병용, 글루카곤 병용으로 개발 경쟁이 다변화되고 있다.
경구제·장기지속형 제형도 주요 축으로
투여 편의성을 둘러싼 경쟁도 본격화됐다. 아스트라제네카는 경구 GLP-1 수용체 작용제 엘레코글리프론(elecoglipron, AZD5004)을 통해 주사제 중심 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릴리 역시 경구 GLP-1 계열인 오르포글리프론(orforglipron) 개발을 이어가고 있다. 아직 주사제 대비 체중 감소 폭이나 장기 안전성에서 추가 검증이 필요하지만, 경구제는 복용 편의성, 생산·공급, 초기 치료 접근성 측면에서 시장 확대 가능성이 크다.
또 다른 축은 장기지속형 제형이다. 비만·당뇨 치료제는 만성질환 치료제인 만큼 단기간 감량 효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치료 중단 이후 체중 재증가, 반복 주사에 따른 순응도 저하, 위장관계 이상반응 등이 장기 치료의 걸림돌로 지적된다. 이에 따라 글로벌 시장에서는 주 1회에서 월 1회, 나아가 더 긴 투여 간격을 구현하려는 제형 경쟁도 활발해지고 있다.
이 흐름은 국내 기업들이 ADA에서 내세운 전략과 맞물린다. 글로벌 빅파마가 새로운 기전과 대규모 임상으로 시장의 상단을 끌어올리고 있다면, 국내 기업들은 이미 검증된 GLP-1 계열 또는 차세대 다중작용제를 더 오래, 더 안정적으로 전달하는 기술에 집중하고 있다.
국내 기업 발표 무게중심은 DDS·월 1회 제형
국내 기업 중 가장 뚜렷한 흐름은 장기지속형 주사제 개발이다.
인벤티지랩은 ADA 2026에서 세마글루타이드 기반 월 1회 장기지속형 주사제 IVL3021과 티르제파타이드 기반 장기지속형 주사제 IVL3024의 연구 성과를 발표했다. IVL3021은 고지방식이 비만 랫드 모델에서 용량 의존적인 체중 감소 효과를 보였고, 위고비 투여 후 IVL3021로 전환하는 전략에서 체중 감소 상태를 유지하는 결과를 제시했다. 비만 치료제 중단 이후 체중 재증가가 임상 현장의 주요 문제로 지적되는 만큼, 유지요법으로서 장기지속형 제형의 가능성을 보여준 데이터다.
IVL3024는 티르제파타이드 기반 파이프라인이다. 인벤티지랩은 미니피그 약동학 평가에서 단회 피하 투여 후 2개월 동안 안정적인 약물 노출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회사의 IVL-DrugFluidic 플랫폼은 펩타이드 약물 탑재와 봉입률을 높이는 마이크로플루이딕스 기반 기술로, 고용량 펩타이드의 장기지속형 제형화 가능성을 제시했다.
펩트론도 세마글루타이드 기반 1개월 지속형 당뇨·비만 치료제 후보물질 PT403의 비임상 및 안전성·내약성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PT403은 회사의 스마트데포(SmartDepot) 플랫폼을 적용한 월 1회 서방형 주사제다. 고지방식이 비만 마우스 모델에서 PT403 2주 및 3주 간격 투여군은 4주 시점 약 30% 수준의 체중 감소를 보였다. 건강한 성인 16명을 대상으로 한 평가에서는 기존 주 1회 세마글루타이드 투여군 대비 구토와 메스꺼움이 관찰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지투지바이오는 이중·삼중작용제의 장기지속형 제형화 가능성을 앞세웠다. 회사는 카그리세마, 티르제파타이드, 레타트루타이드 성분의 전임상 데이터를 공개하고, 이노램프(InnoLAMP) 플랫폼을 기반으로 펩타이드 50% 이상 탑재가 가능한 SC 제형 가능성을 제시했다. 설치류 실험에서 첫 투약 후 24시간 내 초기 방출을 5% 미만으로 제어했고, 혈장 내 약물 농도는 28일 이상 유지됐다고 밝혔다.
이 같은 발표는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직접 신약 개발 경쟁에 뛰어들기보다, 차세대 대사질환 치료제의 제형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티르제파타이드, 카그리세마, 레타트루타이드처럼 고용량 펩타이드 기반 치료제는 장기지속형 피하주사제로 구현하기가 쉽지 않다. 약물 탑재량, 초기 방출, 균일한 입자 크기, 안정적인 혈중 농도 유지가 모두 기술 장벽으로 작용한다.
프로젠·대원제약, 다중기전으로 신약개발 차별화
국내 기업 발표가 모두 DDS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일부 기업은 글로벌 트렌드와 유사하게 다중작용제와 체성분 개선을 앞세웠다.
프로젠은 GLP-1/GLP-2 이중작용제 PG-102의 제2형 당뇨병 2a상 결과를 발표했다. PG-102는 혈당 개선과 함께 지방 중심의 체성분 개선을 보였고, 월 1회 투여군에서는 구토가 보고되지 않아 장기 유지 치료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설명이다.
프로젠의 발표는 글로벌 대사질환 치료제 개발 방향과 맞닿아 있다. 체중을 많이 줄이는 치료제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크지만, 고령 환자와 장기 유병 환자가 늘어날수록 근육 보존, 내약성, 치료 지속성은 별도의 경쟁력이 된다. 특히 GLP-1 계열 치료제 사용 시 제기되는 제지방량 감소 우려와 장기 유지요법의 필요성은 후속 치료제 개발에서 중요한 평가 지표로 자리 잡고 있다.
대원제약은 팜어스바이오사이언스와 공동 연구 중인 GLP-1/GIP/GCG/Gastrin 4중 작용제의 전임상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후보물질은 비만 치료 과정에서 체중 감량뿐 아니라 췌장 베타세포 보호와 신장 기능 개선을 동시에 유도하도록 설계됐다.
기존 GLP-1/GIP/GCG 3중작용제에 가스트린 수용체 활성화 기전을 더해 세포 재생 및 장기 보호 측면을 보완했다는 설명이다. 전임상 시험에서는 식이 유도 비만 마우스 모델에서 투여 22일 차 대조군 대비 최대 50% 이상 체중 감소, 공복 혈당 감소 효과가 확인됐다.
국내 기업의 기회는 체중감량 지속성·근육보존에서 찾아야
ADA 2026은 글로벌 비만·당뇨 치료제 경쟁이 한 단계 더 진화했음을 보여줬다. 릴리, 노보노디스크, 아스트라제네카, 베링거인겔하임 등 글로벌 제약사들은 더 강한 체중 감소, 더 넓은 대사질환 적응증, 경구제, 장기 보호 효과를 앞세우고 있다. 시장의 기준은 계속 올라가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같은 방식으로 대규모 3상 경쟁을 벌이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GLP-1 계열 치료제가 만성질환 치료제로 자리 잡을수록 새로운 과제도 커진다. 반복 주사 부담, 치료 중단 후 체중 재증가, 위장관계 이상반응, 고용량 펩타이드 제형화, 장기 유지요법, 근육 보존 등이 대표적이다.
이번 ADA에서 국내 기업들이 집중한 DDS와 장기지속형 제형은 이 지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글로벌 빅파마가 신약의 효능 상한선을 끌어올리고 있다면, 국내 기업들은 그 치료제를 더 오래, 더 편리하게, 더 안정적으로 쓰게 만드는 기술을 제시하고 있다. 차세대 대사질환 치료제 시장에서 국내 기업의 경쟁력은 새로운 기전 자체보다 체중감량 이후의 지속성과 근육보존 등에 달려 있다.